경제 성장기

2006년
분당 보정역 45평 고층아파트(전세)로 이사
아버지, 원룸 오피스텔 매입 -> 아버지와 어머니 별거 시작
아버지로부터 생활비 단절 -> 어머니의 비자금 500만원에서 생활비 충당
아버지, 막내 고3학비 단절 -> 어머니의 비자금에서 충당
첫째 언니, 국민대 근처에서 자취 및 경제적 독립(아르바이트)
나, 홍콩으로 교환학생 파견 및 경제적 독립(아르바이트)
막내, 수능 준비

2007년
어머니 비자금 소진 -> 수목원 입사(월수입 50만원)
첫째 언니, 자취 및 경제적독립(아르바이트)
나, 영국으로 유급 자원봉사 파견 및 경제적 독립(일비)
막내, 경희대 입학 및 경제적 독립(아르바이트)

2008
분당 미금역 25평 빌라(전세)로 이사 -> 아버지 오피스텔 생활 지속 -> 아버지 어머니 거주지 완전 분리(그러나 모든 집은 아버지 명의)
이사 중 어머니 사고로 두 다리 골절 및 깁스 -> 수목원 일 포기
첫째 언니, 대학원 준비 돌입 및 경제적 독립(아르바이트)
나, 광고회사 입사(월수입 170만원) -> 어머니에게 생활비 50만원 지불, 아버지에게 용돈 50만원 지불
나, 그 해 8월 대학교 졸업
막내, 경희대 기숙사로 이전 및 경제적 독립(아르바이트)

2009
어머니 다리 회복 -> 문방구 아르바이트 및 빵집 아르바이트 시작(월 30만원)
딸들의 설득으로 아버지와 어머니 법적 이혼 소송 진행 및 확정 -> 어머니, 위자료 대신 현재 거주하는 집 명의를 아버지에서 어머니로 변경
첫째 언니, 서울대학원 입학 및 학자금 대출 -> 아르바이트로 학자금 원리금 지불 및 경제적 독립(아르바이트)
나, 생활비 50만원 지불 및 아버지 용돈 50만원 지불 지속
막내, 경희대 기숙사 생활 및 경제적 독립 (아르바이트)

2010
어머니, 수목원 재입사(월 50만원) -> 이혼소송 변호사 선임료 2천만원에 대한 대출금 지불 시작
그 외 현상 지속

2011
어머니, 수목원 일 지속 -> 변호사비 대출금 지불 지속
첫째 언니, 코이카 입사 (월급 250만원) -> 생활비 지불 시작(60만원) 
막내, 기숙사에서 집으로 복귀 -> 취업준비 시작
나, 막내의 집 복귀로 인해 반지층 원룸 자취 시작 -> 건강 악화 -> 해피빈 입사 (월급 300만원) -> 생활비 지불 30만원 및 아버지 용돈 30만원으로 축소지불

2012
용인 수지로 이사(전세)
어머니 양재천 방문자센터 입사 (월급 110만원) -> 저축 시작
언니(60만원)와 나(30만원) 생활비 지불 지속 및 학자금 원리급 지불 완료
막내 이랜드입사(월급 180만원)

2013
어머니, 직장 재계약(월급 110만원) 성공 -> 대출 원리금 모두 갚음 -> 저축 강화
어머니, 언니, 나, 동생 모두 직장생활 매진 -> 생활비 분담
경제적 안정

2014
집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
어머니, 직장 재계약(월급 110만원) 성공
나 공공기관(월급 300만원) 입사
언니, 동생 결혼 후 독립 -> 아버지가 결혼자금 지원

2015
서울로 이사(전세)
어머니, 직장 재계약(월급 120만원) 성공
나 직장 퇴사 및 대학원준비

*
위 시간동안
아버지는 어머니에 대한 당신의 부채의식을 덜기 위해서인진 모르겠지만
딸 셋 각자 명의의 집을 마련하고 있었다.
또한 직장생활 초반 내가 매달 드린 아버지 용돈은 내 명의의 적금으로 돌아왔다.

*

어머니와 우리 세 딸은, 지나간 이야기 중 잘 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가정사와 결부된 경제적 과정이었다.
어찌보면 전 과정이 어머니의 경제적 독립을 중심축으로 흘러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세 딸, 각자가 마주한 싸움들은 서로를 상처주기도 했다.
왜냐하면 개개인이 마주한 숙제가 서로의 삶이 되었고 그것은 서로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언니가 직장을 잡지 않고 대학원을 준비했던 2009년 전후로는 나는 참 많이 언니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미학 공부를 하는 언니의 지적 허영을 질타했지만 사실은 혼자 경제적 부담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싫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집을 떠나기 시작했던 2006년 2007년을 해외에서 도피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한창 가정이 위기에 처한 과정을 홀로 마주했던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과, 내가 귀국 후 우리가 싸울 때면 언니가 왜 그리도 많이 울었는지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언니가 학자금 대출을 다 갚던(그와 동시에 어머니도 변호사 선임료를 다 갚던)
2012년이 되어서야 나는 세월은 흐르고 있고 상황은 나아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외로움

대학교 1학년
새벽 1시 귀가길에 술에 취한 남자에게서 성추행을 당했다
검은 새벽 내 목을 조르고 숲으로 끌고 들어간 그는
나의 가슴에 손을 넣었다
나무를 끌어안고 발버둥을 치고
가방을 통째로 넘겨준 후에야
목에 강한 멍을 남긴 그 굵직한 손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언니와 부모님에게
그날 내가 겪은 일을 말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나는 목과 턱에 든 큰 멍자국을 숨겨야 했다

수치심도 두려움도 아니었다
나의 말로 인해 그들에게 줄 상처 때문이었다

그 때 난 외로움을 알았다
사랑하는 이들에게 남겨질 상처가 두려워
오로지 혼자 감내해야만 하는 걱정
그건 외로움이었다

이 외로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앞에 있다
그와 내가 마주한 해법의 차이 앞에 있다
사랑이라는 관계속에 나의 고민이 어쩌면
그 내밀한 관계속 불협화음으로 인한 자신만의 치욕이
가족들에게 상처가 될 것임이 두려워
막연히 뜬구름 잡는 이야길 하곤 하는 것이다
그리곤 툭하면 모든 것을 리셋한 상상속의 세계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love

사랑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사실은
나의 프라이드를 버려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나를 포기할 때에 진정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진정 원하는 것도
진정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야 비로소
'누군가를 사랑한다'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 길만이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다.
내가 일궈온 나의 삶과
내가 가꿔온 우정이라는 허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여태 모르고 살아왔던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우정, 신의, 충의, 신념 따위는 거저 버릴 수 있을 때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사랑을 얻기 위해선 무엇이든지 포기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 버린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지키고자 했던 그것은 나의 수치였고
포기하지 않았던 나의 모습은 그의 경멸이 되었다.





love

누군가와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과정이
상대에게 투영된 나의 욕망과 기대를 통해
나의 위선과 거짓된 모습을 마주하고
그 모습이 상대에게 모두 발가벗겨져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련의 과정을 용납할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과 친구들까지도 나의 위선을 
그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꿈꿔온 나 자신을 포기함으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그의 존엄이 지켜질 수 있다면
기꺼이 나 하나쯤이야 위선자가 될 수 있다는 다짐을 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실패없는 사랑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거라는 것을
지난 짧지 않은 시간을 통해 깨달았을 때
앞으로 나에게 주어진 삶의 그림이
영원히 내가 원하는 내 자신이 되지 않을수도
내가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할수도 있다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겸손이라 불리는 
그 어떤 체념을 
진정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용납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라는 사실을
나는 서른이 넘은 이제서야 
내가 그다지 정직하지도, 고결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 버림으로서 받아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