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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당신의 눈물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나이.

기도

어느 시점이었을까.
타인과 환경을 탓하기에 너무 멀리와 버린듯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있지도
나 자신에게도 성장이 되고 있지 않은 이 시간들.
조직 안의 성과가 내 삶의 성과와 이어지지 않는 느낌.

매월 25일 월급통장으로 들어오는 3백만원을 위해
내 양심과 시간을 팔아먹고 있다.

언젠가 직장을 그만둔 선배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더 이상 이 게임에 놀아나지 않을거라고
게임이라...
조직이 부여해준 미션을 달성했다면
제 역할을 다 한것이라는 최면.

내 인생이 평생 교만 속에서 방황만 하다가 끝나지 않길 기도한다.

이천십사년 구월 오일



지난 29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한 곳에 뛰어들지 못한 채 경계에서 배회하는 삶을 살아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계를 벗어나 생각과 행동이 일치된 삶을 마주하기엔 세상에 대한 의심이 많고 배포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12살이 되던 해가 생각납니다. 성공의 지름길은 ‘명문대’라고 여기셨던 부모님을 따라 강남 8학군인 대치동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그곳의 치열한 입시경쟁에서 소위 명문고에 진학했습니다. 이듬해 이해찬 2세대 모두가 그랬듯 갑작스런 고교 평준화와 교육에 대한 불신이 찾아왔습니다. 그 때의 저는 국영수를 잘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하나없는 무능한 팔방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대학에 들어서자 학벌과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와 소득과 계급의 격차가 실감나는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꼈습니다. 그리곤 도피하듯 2개월간 네팔로 봉사활동을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마주한 세상은 내가 이제껏 경멸했던 세상과는 달리 사랑할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 계기로 ‘인권’과 ‘빈곤’, 나아가 ‘사회적 소외계층’과 이들이 마주한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세계관이 분명해 질수록 경계 위에서의 삶은 위험부담을 수반했습니다. 현실에서 주어진 기회와 제가 지향하는 가치관을 일치시키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의 제약 속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힘을 기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안과 허영에 가득 차 행동보다 생각과 말만 많았던 지난 29년. 이제 그만 접고 새로 시작할 때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이천십사년 구월 일일

9월이다.
이제 가을이 오고 몇 개월 후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언니가 결혼했다.
곧 뉴욕으로 실려갈 짐꾸러미가 언니 방에 가득하다.

엄마와 나 둘만 남았다.
난 엄마를 조금 더 지킬 예정이다.

홍선생님은 흙을 다루는데 있어
내가 누군가를 가르칠만한 부분이 있다 했다.
스스로 알아차릴 때까지 말하지 않겠다 한다.
곧이어 신선생님은 혜진쌤 사람 만든게 좋다고 했다.
아마도 사람 인체를 다루는 부분이지 싶다.

막연하게 그리던 삶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는 기분이다.

언젠가 주역을 공부하던 선배가
나에게 물水기운이 강하다 했다.
흙土은 물기운을 성장시킨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오늘은 새삼 그 말이 맞다 싶다.
성질이 급하고 기다릴 줄 모르는 내게
흙은 절제하는 법을 가르친듯하다.


작가 안규철

나는 이상주의자는 못되는 것 같다. 어떤 확고한 신념을 갖고 이것을 세상에서 관철시키고 구현하기에는 너무 소심하다고 해야할까.
이건 안되는 거야라고 너무 쉽게 포기한다고 할까. 또는 사람에 대해서 더 이상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진보주의자의 태도는 갖고 있다.
지금 내 모습이, 위치가 마냥 좋으니 하던짓만 하자고 한다면 그건 너무 인생을 싸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지금 이 시대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의문하고,
아주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생활 양상 속에 빠져있는 부분을 계속 찾고,
결핍과 부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작가의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면 작업을 그만해야 한다.

- 몇 년 전 작가 안규철 인터뷰 中